또 하나의 삼국사기 菊露秋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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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화가 자신만의 삼국사기(?)를 지었다면 여기 또 하나의 삼국사기라고 볼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이트서 찾았습니다.

姜璘 著, 2卷 2冊의 菊露秋寫입니다.

그냥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그대로 베낀거라면 별로 흥미가 없지만 내용이 다른 부분이 상당수 있어 관심이 갑니다.

처음에는 참고서적목록에, 高句麗留記가 있어 눈이 번쩍 뜨였는 데, 문맥을 자세히 보니 그냥 (高句)麗記인 것 같습니다.

참고 했다는 서적목록을 보니,

古朝鮮記○朝鮮實記○天統史○平壤史○馬韓史○渤海史○遼東史○遼史○東史○朝鮮列傳○漢書○魏志○晉書○隋紀○唐志○唐東征紀○高句麗留記○百濟史○新羅古志○三國遺事○東史略○東國通鑑○歷代總目○彝尊錄○東史年表○星湖僿說○歷代一覽表○朝野輯要○大東史○輿地勝覽○東史輯略○朝鮮史略 등입니다.

위에는 없지만 三國史도 있는 데, 아마 삼국사기인 것 같습니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不詳입니다.

自序에 보면,

著雍執徐菊秋生魄 晉山姜璘 識라 되어 있어

찬술연대가 무진년 9월 16일이군요. 著雍의 著는 箸의 誤記인 듯합니다.

참고서적중 어윤적의 東史年表가 있고, 본문중 李朝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위의 무진년은 1928년이 틀림없습니다.

단군조선부터 신라말까지를 本紀형식으로 서술했는 데,

특이하게도 百濟를 정통으로 놓고 고구려와 신라는 곁가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백제멸망후는 물론 신라기록만 보이지만요...

일견해보니, 다음 몇가지 기록들이 눈에 띕니다.

 

1. 백제 개루왕대 도미전설의 都彌妻 이름은 貞娘이다

2. 가락의 수로왕을, 허황옥이 生面不知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처음에 수로가 남쪽으로 인도의 天竺國을 유람할 때, 國王인 踰陀가 수로가 범상치않음을 보고 그 딸 許阿로 사위를 삼으려 하였으나 수로가 성공한 후에 보자하고 증표를 나눠 갖고 돌아와 개국한 후, 그 소문을 들은 허아가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둘은 10남 2녀를 낳았다.

3. 백제 고이왕 50년(284년) 2월에, 王仁에게 명해 논어 7권과 천자문 1책을 일본에 전해주다

4. 阿且城은 아저성으로 읽는다

5. 백제 분서왕은 304년 10월에,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인 黃倡郞(본래 신라인으로 낙랑에 망명한 자)에게 피살되었다. 黃倡郞은 백제로 들어와 저잣거리에서 매일 검무를 선보여 사람들로 하여금 입소문이 퍼지게 해 그 소문을 들은 왕이 궁으로 불러 감상하던중 黃倡郞이 칼로 가슴을 찔러 사망한 것이다. 黃倡郞은 체포되어 머리와 사지가 찢겨 죽음.

6. 契丹은, 발해사에 의하면 걸안, 고구려사에 의하면 굴단으로 읽는다

7. 512년 6월, 계속되는 于山國의 침입으로 신라왕이 골머리를 않는 중, 이찬 이사부가 그냥 공격을 하면 하세월이 되니 술수로써 복종시키는 게 좋겠다고 해, 이사부가 아슬라군도독이 되어 2000명을 이끌고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배에 나누어 싣고 우산으로 가, 수10리 밖에서 鼓角으로 천지를 진동하는 큰 소리를 만들며,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풀어놓아 한명도 살려두지 않겠다하니 두려워 항복해 왔다.

8. 591년 10월, 고구려가 大兄 온달을 병관도독으로 삼아 3만명을 주어 신라의 阿且城을 치니 신라가 아찬 異信으로 반격하게 하여 고구려군을 대파하고 竹嶺에서 온달을 죽이다.

온달은 평원왕의 작은 딸의 남편. 왕은 이 소식을 듣고 심히 애도하여 大角干을 추증하고 안평군에 봉해 그 가족들에게는 녹봉田을 주었다

9. 나라이름인 可汗은 극한으로 읽는다

10. 612년 1월, 수의 양제는 姜以式 병마도원수를 책임자로 하여 113만 3800명의 군사등으로 고구려를 공격했다. 이때 고구려는 을지문덕을 표기장군으로 삼아 이에 대적했다. 을지문덕이 신책구천문云云의 시를 보낸 상대는 수나라의 강이식장군이다. 대승후 을지문덕은 대공충무장군이 되고 興京을 식읍으로 받았다.

11. 玄菟는 현도로 읽는다

12. 645년 3월, 당의 태종이 고구려 안시성을 공격했으나 성주 楊萬春에게 격퇴당하다. 薛仁貴는 안시성에서 전사했다. 안시성은 지금의 봉황성이다.

13. 660년, 백제 멸망시 계백이 거느린 군사는 5만명이었다. 처음에, 나당연합군이 경기 수천을 요로에 매복시켜놓고 계백에 싸움을 걸었으나 백제군이 싸우러 나오지 않아, 신라군이 사람을 시켜 심한 욕지거리를 엄청나게 해대니 계백이 매우 화가 나 응전을 하러 나옴으로 양쪽에서 협공하여 마침내 계백을 죽이니 나머지 병사들은 다 도망가 순식간에 궤멸되었다.

14. 660년 백제 멸망시 의자왕의 태자는 孝이고, 왕후와 諸姬들은 의자왕을 찾아다니다가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자결했다. 의자왕의 둘째아들은 泰. 孝의 장자는 文思이다.

11월, 의자왕이 北鄙에서 죽어 陳叔寶의 묘 옆에 장사지냈다.

15. 장보고를 암살한 염장은, 당시 武州도독의 직위에 있었다.

16. 후백제의 甄萱은 진훤으로 읽는다

... and more...

 

by 잊혀진미래 | 2007/05/23 12:52 | 역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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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5/23 13:33
일제강점기에 이런 일로 소일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孤藍眞明行 at 2007/05/25 12:08
박창화의 글은 읽으면 읽을 수록 창작의 냄새가 농후하게 느껴집니다. 기존의 사서를 뼈대로 적당히 살을 붙인 느낌이 너무 나네요. 그나저나 사고전서 검색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는데, 검색어에 따라 수십만건도 조회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and 조건문을 몇개 더 넣어서 검색범위를 압축해야하는데.. 이것때문에 고심이 많았죠.

예를 들어 方, 里, 東西, 南北 이 모든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찾고 싶을 때 AND 조건으로 검색을 해야하는데.. 이리저리 쑤셔보다가 겨우 알아냈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하더군요.. 혹시 알고 계신다면 조언해주세요. 모르신다면 제가 찾아낸 방법을 슬쩍 공개해보겠습니다.
Commented by 잊혀진미래 at 2007/05/25 13:41
님/ 복합검색 저는 해보지 않아, 하는 방법을 모르겠군요.
그 방법을 전에 어디서 찾아 하드 어디에 저장해둔 것 같은데, 별 불편이 없어 이용을 안해봐 어디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상에도 사고전서가 전자검색되는 사이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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