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와 黃漆樹

대륙백제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환빠들은 백제의 西海바다 얘기만 나오면 바로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제 환빠들을 한번 더, 나쁜 말로 떡실신시킬 수 있는 자료를 보이겠다.

 

통전/ 백제

國西南海中有三島,出黃漆樹,似小榎樹而大.六月取汁,漆器物若黃金,其光奪目.

 

物理小識 [明 方以智]

권9

朝鮮國有黄漆樹似棕六月取汁漆物如金今廣漆則黄江漆則黑

 

玉芝堂談薈 明 徐應秋 撰

권35

百濟西南海中有三島出黄漆樹似小櫌樹而大六月取汁漆器物若黄金其光奪目

 

태평광기

권406

黄漆樹

日濟國西南海中有三島各相去數十里其島出黄漆似中夏漆樹彼土六月破樹腹承取汁以漆器物若黄金其光奪目(出洽聞記)

※ 처음의 日자는 百의 오기일 것이다 

竹嶼山房雜部 明 宋詡 撰

권9

漆(長葉身短朝鮮國有黄漆樹似棕六月取汁漆物如金)

 

이들 자료를 보면, 백제에서는 그 서남쪽 바다에 있는 섬 3곳에서 황칠수라는 진귀한 나무가 나며 이를 칠하면 황금빛이 난다는 것이다.

이 섬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인 가는 조선왕조실록에 분명히 보인다.

 

정조 41권, 18년( 1794 갑인 / 청 건륭(乾隆) 59년) 12월 25일 무인 3번째기사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별단을 올리다

...

1. 완도는 바로 황칠(黃柒)이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에 본도의 감영·병영·수영 및 본도의 지방인 강진·해남·영암 등 세 읍에다 모두 연례적으로 바치는 것이 있고 왕왕 더 징수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근년 이래로 나무의 산출은 점점 전보다 못한데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관에 바칠 즈음에는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날로 더 많아지니 실로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금년에 바람의 재해를 입은 후에 큰 나무는 또한 말라 죽은 것이 많고 겨우 어린 나무 약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황칠(黃柒)은 또한 기물의 수요에 관계되는 것인 만큼 마땅히 배양하고 심고 가꾸어 국용에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10년을 한정하여 영과 읍에 으레 바쳐오던 것을 아울러 감면하여 오래 자라는 실효가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옛날 상태를 회복하여 규례대로 납부하게 된 뒤라도 과외로 징수하는 폐단은 엄격히 조목을 세워 일체 금단해서 영원히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湖南慰諭使徐榮輔進別單曰:...

一, 莞島卽黃漆所産之地, 故本道監兵水營及本島地方康津、海南、靈巖等三邑, 皆有年例所納, 往往有加徵之弊。 挽近以來, 木産漸不如前, 加徵歲有所增, 而納官之際, 吏屬操縱, 情債日多, 實爲難支之弊。 今年風災之後, 大株又多枯損, 堇有穉木略干而已。 黃漆亦係器物緊需, 則所當培養栽植, 以備國用。 自今限十年, 營邑例納, 幷許減免, 俾有長養之實效。 雖於例納復舊之後, 科外加徵之弊, 嚴立科條, 一切禁斷, 永除島中民瘼恐宜。

 

자료를 찾아보아도 황칠수가 나는 곳은 세계에서 완도부근이 유일하다 한다.

즉 황칠수가 나는 곳의 물리적인 위치가 고정되니 이제 백제는 그 동북방향에 있을 수밖에 없고 이곳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 대로 충청도 부여나 공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빠는 시비를 걸려할 지 모른다.

완도가 과연 백제의 서남에 있냐고...............

 

이제 계산으로 보여주마..

백제의 도읍은 부여 아니면 공주이다.

부여[동경 126도 55분, 북위 36도 17분]

공주[동경 127도 07분, 북위 36도 27분]

莞島중심부[동경 126도 42분, 북위 34도 21분]

 

각 지점간의 거리를 계산 해본다[지표상 직선거리]

 

                         부여

                           |

(부여-완도 215km) | (부여 -A간 214km)

                           |

   완도 -- 20km-- (A)

A : 경도는 부여와 같고 위도는 완도와 같은 지점

 

이 값들을 가지고 완도-부여-A 지점간 각도를 계산하면 약 6도가 얻어진다.

 

마찬가지로,

 

                         공주
                           |

(공주-완도 236km) | (공주 -B간 233km)

                           |

   완도 -- 38km-- (B)

B : 경도는 공주와 같고 위도는 완도와 같은 지점

 

이 값들을 가지고 완도-공주-B 지점간 각도를 계산하면 약 9도가 얻어진다.

즉, 공주나 부여를 기준으로 볼 때, 완도는 그 서남방향에 있는 것이다.

 

더 정확히 해볼 까??

옛날에는 그 방향을 측정할 때 나침반을 이용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나침반이 가르키는 자북과 진북은 약간 차이가 난다.

이 차이를 자편각이라 부르는 데, 그 값은 매년 변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약 5-8도사이를 변동하는 것으로 측정된다.

과거 백제시대 이 값이 얼마였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와 큰 차이가 없다고 추정하면, 대략 7도 정도가 될 것이다.

즉, 이 값만큼 자북이 진북보다 서쪽을 가르킨다.

따라서 위의 6도와 9도는 진북을 기준으로 한 방위각이므로, 옛 사람들이 나침반으로 잰 방위각은 , 부여에서 완도를 볼 경우, 남에서 서로 약 13도, 공주에서 완도를 볼 경우는 남에서 서로 약 15도 치우친 것으로 나타났을 것이며 이 방향은 바로 서남방향에 다름 아닌 것이다.


환빠들이여!

헛소리하기 전에 황칠수가 어디에서 나는 지 먼저 알아들 보거라.......

by Comte | 2007/07/13 16:38 | 역사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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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7/13 17:14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침반은 송대에 발명된 것 아니었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그리고 황칠은 전에 그 칠을 재현해낸 장인이 있어서 다큐 프로에도 나오고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Comte at 2007/07/13 17:29
黃帝의 전설에 이미 指南車 얘기가 나오지 않나요????
지금 형태의 나침반은 11세기 송대에 발명되었겠지만 그 전에도 어떤 형태로의 [나침반]은 있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에서 적당한 다른 용어가 없어 나침반이라 썼습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7/13 17:30
그 지남거 이야기가 신비롭기는 한데, 일반적으로는 북송의 심괄(沈括)이 지은 《몽계필담(夢溪筆談)》을 나침반의 시작으로 잡더군요.

에... 일부 환빠는 신라침반의 줄임말이 나침반으로 나침반은 신라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7/13 17:31
앗, 알고 계셨군요...^^;;
Commented by Comte at 2007/07/13 17:44
지금 역사 21토론중에 질문한 내용인 데, 막상 그 분은 답변을 회피하고 다른 글로 물타기하려는 시도인 듯.....
Commented by Comte at 2007/07/13 18:00
http://opc.news.go.kr/common/jsp/popup_news_mail.jsp?_id=155129627 를 참조바랍니다...
이미 고대로부터 나침반 기능을 한 도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Comte at 2007/07/13 18:12
나침반의 최초 용어는 司南[서력전 4세기의 鬼谷子, 서력전 3세기의 韓非子]인 것 같습니다.
나침반이 신라 특산품일 가능성은 있겠지만 , 발명했다는 것은 ?????????????????입니다...
Commented by 孤藍眞明行 at 2007/07/14 23:13
최근에는 대륙백제설의 모순을 극복한답시고 백제 2국가설을 주장하더군요. 정복전쟁 얘기가 나오면 요동이나 요서백제고, 삼국사기 서해바다와 같은 한반도 지정학설이 분명한 기사가 나오면 또 한강백제고.. 당시 백제는 두군데였는데 1차 남하, 2차 남하, 3차 남하를 거치면서 5세기때에는 한반도에 완전히 정착했다는 식의 환타지로 빠진다는거 아닙니까?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7/15 16:24
신라도 동신라, 서신라 운운하는 인간들이니까요. 점점 더 파탄의 늪에 빠지는 군요.
Commented by Shaw at 2007/07/18 18:10
초록불님 블로그를 거쳐 제 블로그에 왔던, "지나가다" 가 백제 이동론자였지요...
Commented by 세이 at 2007/07/29 17:16
서남해는 인도양 혹은 남대서양이라고 볼 수 있으며, 백제는 아프리카에 있었다...라는 변종도 탄생할까봐 두렵군요. 어차피 고고학적 증거는 그들의 주장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할 듯 합니다. 어떤 증거를 들어도 전부 중국과 일본, 서양에 의해서 조작된 사료라고 받아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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