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유고 려사열전-金義珍傳

金義珍傳 [1012년 이전 - 1070년 卒]

金義珍倜儻有大志少學于金審言之子軾問天外之事審言曰此兒眼光非常而少言語所思出人後必有名乃授恭謙二字是年義珍年才七歲審言卒能作祭文曰棟梁折山斗崩一國痛小子孤自是文名已振軾以其女妻之登第上書請懲有妻僧充(?)於役徒奪其妻以賜農民之無妻者僧侶疾之邀擊于路朝議沸騰遂錄滛僧五十七人使屬重光寺役徒奪其妻女爲州郡農民妻其外有品豪僧之有妻者或還俗或贖錢以免人多抉之自是僧侶之出入妓樓者絶焉顯宗善書朝士爭模其體獨不肯之及有僞造御筆密詔者文士多被嫌而晏然李子淵以外戚超進先輩莫敢言而獨論其不可婭艾璫之婿庾仲卿以其外祖亂婚之罪登苐未敍子淵贊其議義珍曰羅末國初莫不亂若罪其後何特仲卿哉且犯者尙平章而外孫何罪莫論每多此類文宗庚戌[1070년]以平章事致仕卒諡良慎金景庸[1041-1125년]任懿[1041-1117년]李瑋[1049-1133년]皇甫弼等皆出於公之門徒弼獨創道流而夭他皆顯貴其徒尙義氣不拘小節頗有香徒之風

※ 1070년 8월 卒

金審言(?-1018년)이 살아 있을 때 최소 7세라 했으니, 김의진은 1012년 이전 출생이다.

重光寺는 1012년 창건. 이자연(1003-1061년).

庾仲卿은 고려명장 유검필의 후손(유중경의 외조부되는 평장사(平章事) 이공(李龔)이 자기 형인 소경(少卿) 이몽(李蒙)의 딸을 간음해 유중경의 어머니를 낳았었음)

고려사절요에는 위 논의에 있어 이자연에 반대한 의견을 개진한 자가 金元鼎등 4명으로 나온다. 김의진의 이름은 없다. 이 때는 1058년 5월이다.

有妻僧을 징발해 중광사 노역에 동원했다는 기록은 고려사절요(현종 20년, 1029년 6월)에 보이나 자세한 설명은 없다.

by Comte | 2013/10/07 16:39 | 역사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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