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 장한웅

도인 장한웅 張漢雄 (1519-1592)

 

원본글 출처

장한웅의 전(傳)

저자

허균(許筠)

원전서지

국조인물고 권54 왜난시 입절인(倭難時立節人) 피구인부(被拘人附)

장 산인(張山人)의 이름은 한웅(漢雄)인데, 자세한 내력(來歷)은 알 수 없다. 그의 조부(祖父)로부터 3대에 걸쳐 양의(瘍醫, 종기, 부스럼, 외상 등을 치료하는 의원)를 가업(家業)으로 삼았으며, 그의 부친은 일찍이 상륙(商陸, 한약재 이름)을 먹고서 귀신을 볼 수도 있고 부릴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이가 98세나 되어서도 마치 40세 정도로 젊게 보였으며, 출가(出家)하여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가 집을 떠날 때 2권의 책을 아들에게 주었는데 바로 ≪옥추경(玉樞經)≫과 ≪운화현추(運化玄樞)≫1)였다.

 

산인(山人, 장한웅)이 그 책을 받아 수만 번을 읽고 나자 그도 또한 귀신을 불러오게 할 수 있었고, 학질(瘧疾)도 낫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일을 그만두고는 마흔 살[1558년]에 출가하여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찍이 이인(異人)을 만나 연마법(煉魔法)을 배웠고, 또 도교(道敎)의 수진법(修眞法)에 관한 10종의 서적을 읽었다.

 

텅 빈 암자에 앉아서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3년여를 보낸 뒤의 어느 날에 산중의 협곡(峽谷)을 지나는데 승려 두 사람이 그를 따라갔다. 숲이 우거진 곳에 이르자 두 마리의 호랑이가 나타나 엎드린 채 그들을 맞아주었다. 이에 산인이 호랑이를 꾸짖자 호랑이들은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며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처럼 굴었다. 이윽고 산인이 한 마리의 호랑이에 올라타고 두 중으로 하여금 함께 다른 한 마리에 걸터앉게 하여 절간의 문 앞에 이르자 호랑이들이 그들을 내려놓고 물러가 버렸다.

 

지리산에서 산 지 18년 뒤에 서울로 돌아와 흥인문(興仁門) 밖에서 살았는데, 나이가 60세[1578년경]나 되었으나 머리가 검고 용모가 쇠하지 않았다. 이웃에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 있었는데 흉가(凶家)여서 들어가 살 수가 없자, 그 집의 주인이 귀신을 내쫓아달라고 그에게 청원하였다. 이에 산인이 밤에 그 집에 가니 두 명의 귀신이 있다가 산인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우리는 문(門) 귀신과 부엌 귀신입니다. 요사스러운 뱀이 이 집을 점거하고서 간사한 짓을 부리고 있으니, 제발 그 뱀을 죽여주십시오.”라고 하고서는, 즉시 뜰 안에 있는 큰 홰나무 밑둥으로 갔다. 이에 산인이 주문(呪文)을 외우며 입에 머금은 물을 뿜어내자 조금 뒤에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한 큰 뱀이 눈을 번쩍거리며 꿈틀꿈틀 기어 나오다가 절반이 채 나오지 못하고서 죽어 버렸다. 그 뱀을 불에 태워버리게 하자 그 흉가가 마침내 깨끗해졌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곶이[箭串]에 놀러가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산인이 죽은 물고기를 골라 물동이에 담아두고는 숟가락으로 약을 떠서 물동이에 넣으면 물고기가 다시 살아나서 유유히 헤엄을 치곤 하였다. 사람들이 죽은 꿩으로 시험을 해보게 하자, 산인이 또 숟가락으로 약을 떠서 죽은 꿩의 입 속에 넣으니 즉시 훨훨 날개를 치며 살아나곤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는가?”라고 물으니, 산인이 말하기를, “보통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에 그 정(情)을 함부로 써서 삼혼(三魂)과 칠백2)(七魄)이 집에서 떠난 것도 3년이 지난 뒤에야 바야흐로 끊어지니, 약으로 살려낼 수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산인은 거짓으로 글자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나 글을 지으면 좋게 잘 지어냈고, 또 밤눈이 어둡다고 하고서 밤에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면서도 어두운 곳에서 작은 글씨도 잘 읽었다. 그 이외의 잡기(雜技) 놀이로 베로 만든 병(甁)에 술을 담는 것이나 종이로 만든 그릇에 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일 등 세상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한 것들이 이루 다 쓸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점쟁이 이화(李和)라는 자가 당시에 점을 잘 치기로 한창 유명하였는데, 산인은 그를 자기보다 아랫수로 여기었다. 그가 점을 치다가 잘못 치는 것을 보게 되면 산인이 점괘를 고쳐주곤 하였는데, 그 말이 모두 적중하여 이화가 감히 한 마디도 보태지 못하였다. 이화가 말하기를, “산인의 좌우(左右)에는 항상 3백 명의 귀신들이 호위하고 있으니, 그는 정말 이인(異人)이다.”고 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을 때 산인의 나이가 74세[1519년생]였는데, 그는 가산(家産)을 처분하여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승복(僧服)에 지팡이 하나만 짚고서 5월에 소요산(逍遙山)에 들어갔다. 그곳의 중에게 말하기를, “올해는 나의 목숨이 끝나는 해이니, 내가 죽거든 화장(火葬)을 해달라.”고 하였고, 그로부터 오래 되지 않아 왜적이 그곳에 들이닥쳤는데, 산인은 왜적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칼에 찔리었다. 그의 피는 하얀 기름 같았고 꼿꼿하게 선 채로 쓰러지지 않았다. 잠시 뒤에 큰 우레가 치며 비가 쏟아지자 왜적들이 겁을 먹고 가버렸다. 산승(山僧)이 그의 시신을 다비(茶毘)하자 서광(瑞光)이 삼일동안 밤낮으로 하늘까지 뻗쳐 있었고 사리(舍利) 72알[粒]을 얻었는데, 그 크기가 가시연 열매[芡實]만큼 컸고 색깔은 감청색(紺靑色)이었으며, 모두 탑 속에 저장하였다.

 

그해 9월에 산인은 강화도(江華島)에 사는 정붕(鄭䨜)의 집에 이르렀는데, 정붕은 그가 죽은 줄을 모르고 있었으며, 산인은 정붕의 집에서 3일 동안 머물다가 떠나가면서 금강산으로 간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 이듬해가 되어서야 바야흐로 그가 이미 죽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검해(劒解)였다고 말하였다. 정붕도 또한 이인(異人)을 만나서 점을 잘 치고 관상을 잘 보는 상위가(象緯家)였으며, 그가 하는 말마다 기이하게 적중하는 때가 많았으며, 재랑(齋郞, 참봉(參奉)을 말함)에 임명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혹자는 그가 귀신을 부릴 수 있었는데 일찍 죽었다고 한다.

 

각주

1) ≪옥추경(玉樞經)≫은 도교(道敎)의 경전(經典)으로, ≪전등신화(剪燈新話)≫에 “평일에 옥추경을 외울 수 있었다.”고 하는 구절이 보이며, ≪운화현추(運化玄樞)≫는 천경당 서목(千頃堂書目)에 분량이 1권이라는 것만 전해지는데, 추측컨대 도가류(道家類)의 서적인 듯하나 자세한 내용은 미상임.

2) 삼혼(三魂)과 칠백(七魄) : 삼혼(三魂)은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세 가지 정혼(精魂)으로, 곧 태광(台光)ㆍ상령(爽靈)ㆍ유정(幽精)을 이른다. 칠백(七魄)은 도교(道敎)에서 사람의 몸에 들어있다고 하는 일곱 가지 혼백(魂魄)으로, 곧 시구(尸狗)ㆍ복시(伏矢)ㆍ작음(雀陰)ㆍ탄적(呑賊)ㆍ비독(非毒)ㆍ제예(除穢)ㆍ취폐(臭肺)임.

 

[네이버 지식백과] 장한웅 [張漢雄] (국역 국조인물고, 1999.12.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by Comte | 2013/10/09 15:59 | 잡동사니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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